세례요한의 죽음
세례 요한은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예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마태복음 14장과 마가복음 6장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로데 안티파스 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는 헤로데가 그의 형제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 결혼이 율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으로 인해 헤로데는 요한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요한을 두려워하고 존경하여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요한을 원망하며 그의 죽음을 원했습니다. 헤로데의 생일 연회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헤로데와 손님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이에 헤로데는 그녀에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했습니다. 헤로데는 슬퍼했지만, 맹세와 손님들 앞에서의 체면 때문에 요한의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소녀는 그것을 어머니인 헤로디아에게 가져갔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하고 예수께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의 사역과 운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순교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1. 세례요한의 죽음이 과연 순교인가?
그는 무엇을 위해 죽었나?
순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박해를 받아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요한이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헤롯왕을 비판하였나?
세례요한이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헤롯왕의 추문을 지적하엿나?
그는 무엇을 위하여 헤롯왕의 추한 행실을 비판하였나? 왕을 계도하기 위하여? 왕을 계몽하기 위하여? 그는 무엇을 위하여 헤롯왕을 비판하였나?
세례요한은 비판자인가? 계몽자인가? 정치가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의 죽음은 진리를 지키기 위한 희생으로 간주되어 순교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럼 묻겟다.
그는 무슨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순교하였나?
도덕성? 왕의 행실?
진리란 무엇인가?
쳇gpt에게 물어봣다.
"진리는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 보편적 사실이나 원칙을 의미합니다. 철학자들은 진리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반면, 현대 철학에서는 진리를 상대적이거나 사회적 구성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은 진리의 복잡성과 그 정의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란 말씀이다. 말씀이란 곧 하나님이다.
말씀의 육신이 된자가 예수그리스도라 하셧기 때문이다.
고로,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한마디로 말하겟다.
그당시에 진리를 지키는 것은 곧 예수를 지키는 것이다.
그가 예수를 지켯나?
헤롯의 도덕성을 지켯나?
언젠가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예수님께 제자를 보내 ‘오실 그분이 당신이냐?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눅 7:19~20). 그때 예수님이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고 전하라’ 하시면서 매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나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리라.
천국에서는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왜? 대선지자가 천국에서는 미미한 존재인가?
왜? 위대한 순교자가 천국에서는 미미한 존재인가?
내가 한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성경에 이렇게 되어 있는데 무슨 순교니 위대하다 하나?
위대한 자가 왜? 천국에서는 미미한 존재인가?
너희가 흔들리는 갈대냐?
왜 광야로 나갔냐?
광야로 나갔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말씀의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따랐어야지. 이놈아!
왜 광야로 나갔냐? 이겁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촌입니다.
나를 보고 실족치 마라 하신말씀은 세례요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실족이란 실망이란 말입니다.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세례를 준 사람이 요한 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 이 된거 아닙니까?
그랫으면, 예수님이 아무리 자기 사촌이고 보잘거 없다 하여도 실족 실망치 말아야지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세례요한의 말입니다.
왜? 자기는 쇠하여야 하나? 세례요한은 그시대 대 선지자이기에 헤롯왕마져 무서워 했던 인물이다.
그런자가 예수님을 증거하면 어떠하겟는가?
세상이 뒤집어 지지 않겟는가?
자기가 봣지않았나? 성령이 그의 머리에 내려 앉는 것을 ...
근데 왜 증거하지 않고 몰라보고 오실이가 당신이오니까? 라고 또 묻냐?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6)
실족했다 즉, 실망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눅 7:23).
이미 이말씀으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죽음을 예언하셧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진 사람은 세례요한이다.
너희가 무엇을 바라고 광야로 나갔단 말이냐? 너희들의 목적이 도대체 무엇이냐?
아직도 나를 몰라보고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라고 묻느냐? 너가 세례를 직접 주고 성령을 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왓다 저리왓다 그인가 저인가? 하면서 되묻고 또묻고 그러느냐?
뭣때문에 실족하였느냐? 사촌동생이라서? 모습이 형편없어서? 볼품없어서? 왜 흔들렷느냐 말이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요한은 말씀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 오시기 전에 엘리야의 사명으로 그의 길을 평탄케 해야 하는게 그의 사명이다.
그의 길을 평탄케 한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그가 말씀을 잘 전할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는 조력치 아니하고 정치에 빠져버렷다.
종교가 정치에 빠지면 어찌 되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누구를 저주하면, 반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그 누구를 옹호하는자 있지 않겟는가?
그래서 , 종교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누구를 지지하면 누구는 반대할것이고,
그래서 종교전쟁이 일어나 유혈사태가 났다는 것은 종교역사에 허다하다.
개인의 신념으로 가면 갔지 종교의 이름으로 정치집회에 나가지 마라.
아니 아예 정치집회는 나가지 마라.
그럴 시간 있으면 한명이라도 전도를 해라.
종교의 이름으로 집단을 이루어 정치 세력화 한다면 세례요한과 다를바 없는 자이다.
하나님이 제일 실어하는 자이다.
천국에서 가장 미미한 자가 될려면 세례요한 처럼 그렇게 하라.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까지 해보았나 자문해볼일이다.
오늘 어떤 집회에서 각각 반대파 집결지에서 집회전에 기도하는 청년을 보고 생각나서 쓴 글입니다.
누구는 지지하고 누구는 반대하며 기도하고 착찹합니다.